[회고] 가장 특별한 평범함
이 글은 2022년, 군 복무 중 느낀 생각들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록입니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그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 위해 남겨둡니다.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뇌의 부위를 ‘편도체’라고 한다. 아몬드와 닮은 이 부위는 감정을 인식하고 반응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소설 『아몬드』는 이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은 공포라는 감정조차 잘 몰라, 자동차가 돌진해도 피하지 못한 채 서 있기만 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단순히 안타까운 수준을 넘어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엄마와 할머니는 다양한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을 암기하게 시켰다. 물론 실제 삶은 외운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묻지마 살인으로 엄마와 할머니를 잃는다. 이후 곤이와 이도라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소년은 점차 감정을 느끼는 법을 배워간다.
나는 지금껏 ‘감정을 느낄 수 있음’에 대해 한 번도 감사해본 적이 없다. 감정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다가왔고, 표현이 어려운 사람을 만난 적도 없기에 ‘노력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평범한 감정들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올해는 유난히 평범하지 않은 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었고, 마스크 없는 날은 추억으로만 남았다. 4월엔 군에 입대해 1년 반 동안 자유롭고 평범했던 일상을 잠시 내려놓게 됐다. 훈련병 시절, 가까운 사촌 형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들었지만, ‘사촌지간’이라는 이유로 청원휴가는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화장실에 숨어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엄마가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봤다. ‘별일 없는 하루’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우리에게는 가장 소중하고도 감사한 하루다. 그리고 그 ‘오늘’은, 먼저 떠난 사람이 간절히 원했던 내일이기도 하다.
며칠 후면 우리 부대는 무사고 300일을 달성한다. 포대 기준으로는 무사고 1000일을 향해 가고 있다. 수백 명이 함께 생활하는 군대에서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주특기가 뛰어나거나 체력이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사’라는 생각이 든다.
자대에서 만난 동기와 선후임들에게 군생활의 목표가 무엇인지 물으면, 대부분 “무사 전역이요”라고 말한다. 처음엔 그 말이 너무 당연하고 가볍게 들렸다. 어차피 시간만 지나면 전역은 보장된 일이니, 굳이 목표로 삼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1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사고 없이 지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과 중, 훈련 중,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그렇기에 ‘무사 전역’은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특별한 목표다.
『아몬드』의 주인공이 평범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노력했듯, 나도 이 평범한 목표를 위해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다. 그리고 전역하는 날, “별일 없이 여기까지 잘 왔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부대를 떠나고 싶다.